돌아나오는 길은 그래서 더 힘들다.
처음 들어 갈 때와는 정반대의 방향, 그러니까 우회전을 주욱 했다면 좌회전만 주욱 하면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몸으로 익힌 방향 감각은, 아까 우회전 했잖아, 이번에도 그래야지, 라는 식으로 가버려서,
엉뚱한 방향에서 헤매게 된다.
늘 겪는 일이라 그리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요즘에는, 나의 헛방향감각(감각이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여서)이
어떻게 귀소본능은 충실히 수행하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지하철 통로를 잘못 찾는 것은 아주 양호한 상태이며,
햇빛과 바람이 차단된 것에 30분 이상 머물다 나왔을 때는 어김없이 하늘을 휘둘러보고 의식적으로 방향을
탐지해야한다.
지형지물을 기억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통째의 모습이지, 하나하나의 건물이름이나 모양,
위치 등등이 아니기 때문에 길을 설명하는 데는 젬병일 뿐더러, 누군가 어느 빌딩의 우측 어느 골목으로 몇 미터
꺽어 들어와서 지하의 어느 술집, 이런식으로 설명하면 제대로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그래서, 김상배의 몇 미터 앞에다 두고, 라는 식의 노래 제목이나 가사는 내 마음에 와닿을 리가 없다.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같은 노래도 감이 안 오니까. 100미터라니, 가장 체력이 좋았던 시절에 전속력으로
16초를 달려야 닿는 곳에 있다는 말인데, 뭘 설레고 말고 한다는 말인가, 라는 식의 생각만.)
그러나 묘하게도, 무의식적으로 어디론가 가겠다는 생각만으로 걷는 곳은 잘 찾아간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가 아닌,
'가볼까?' 라거나, '그 곳에 가야지'가 아닌 '그 사람에게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출발하면, 그나마 찾는다. 무의식의 걸음이
근처까지는 어떻게 데려가긴 한다. (바로 앞에서 무진장 -_- 헤매는 게 또 문제이지만..)
그러나 똑같은 장소여도, '장소'를 먼저 생각해버려서 '가야만 하는 곳, 어느 경로를 거쳐서 도착해야하는 곳' 등등...
구체화된 어느 시간과 장소가 되어버리면 머리 속의 정보들이 모조리 엉켜버려서 가는 내내, 어버버한 얼굴로
'내가 맞게 가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연신 버스나 지하철의 노선도를 확인하고 창밖을 주시하고
차량의 정류장 안내 방송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남들보다 더.
작년에야 알았다.
나는 소위 말하는, 그, 길치라는 것이구나.
흠.
이상우
1991
GPS나 네비게이션은 길 잘아는 운전자보다 길 못찾는 보행자인 내게,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인지도.
나침반..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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