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리뷰쓰기에 험악한 영화다. 무언가를 봤으나 무엇을 써야할 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영화가 난해한 것도 아니며 어렵지도 않다. 오히려 있는 대로 다 보여준다.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스릴러라기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영화 속의 피 튀기는 장면처럼
배우들의 연기가 충돌한다. R-point와는 또 다르다.
4년전 R-point를 부산의 옛극장가의 어느 극장에서 보고, 질겁을 한 기억이 있다. 이런 열악한
사운드시스템에서 영화를 봐야하다니. 결국 다시 집근처의 메가박스에서 다시 봤다. 역시나.
이런 영화는 제대로 된 음향시설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음향시설이 마음에 드는 ) 메가박스에서의 시사회 내내, 선명하게 좌우에서
곧 죽을 운명인 그들은 속삭였고, 서늘한 뒷머리를 따라서는 내 시선이 움직였고, 긴장된
어깻죽지가 움찔거렸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FPS를 줄창했던 몇 년 전이 떠올라 구역질이 났다.
GP 라는 한정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21명의 소대원들 가운데 19명은 사망하고 1명은 의식 불명이며
(멀쩡히 살아있었으나, 그를 발견한 이들이 살기 위해선 그도 죽는 쪽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찾아낸 한 명은 뭔가를 감춘 듯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같은 느낌이다. 모두 죽었으나, 왜 죽었는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한 사람은 남아있었으나, 그도 결국 죽었다. 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은 살아있던 사람의
일기이다. 상당히 익숙한 패턴, 익숙한 전개,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상황.
일단 그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군대라는 곳도 이상하지만, 남의 나라 군대와 또 다른 우리나라의
군대라는 곳이 이상한 집단이다. [지키기 위하여]라는 명목이지만, 사실 유사시(?)에는 살인집단으로
돌변해야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죽이는 법을 알려줄게, 단 우리끼리는 죽이면 안돼] 라는 것인데,
[우리끼리] 서로 죽이고 죽여버린 것이 문제가 되며, [그것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이제 현실은 [유사시]가 된 것이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더 살려고 발버둥치며 더 서로를 죽이게 된다는 상황은,
GP라는 곳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마치 일상 같았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나는 총알 세례만
주고받지 않을 뿐, 서로 살기 위해 아둥바둥거리는 건 똑같다. 니가 나를 죽이려고 하면 나는 너를
죽이겠다, 라는 것은 암묵적으로 깔려있는 사회의 원동력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사실 善한 것을 동력으로 쓰기엔 그 양이 너무 적기 때문에 惡한 것을 에너지로 하는 쪽이 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된다고, GP에서 소대원들이 죽어감에도 소대장은 자신의 영욕을
차리려다 결국 자신도 죽는다.
영화는 내내 현실을 1/10000로 압축해서 한번에 터트린 듯 암울하다.
[석 달만 지나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들어간 곳에서 모두 죽는다. [열심히(?) 군생활을 하면
언젠가 제대한다]는 것을 헛되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죽어간다. 누구도 왜 그들이 죽었는지,
누가 그들을 죽였는지 알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늘 그렇듯, 마지막 아슬아슬한 때에 날이 밝고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들지만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쩌면, 나도 그런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해나가면 다른 것이 나올 것이다, 라는 믿음은
늘 뒷통수를 둔기로 맞은 듯 멍들어있고, 관자놀이는 방아쇠만 당기지 않았을 뿐인 권총으로
겨누어져 있다. 인식하지만 못할 뿐.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30대 중반의 남자 둘이서 [150만쯤은 가뿐하겠는걸] 이라고 말을 했다.
150만의 인파를 보지 못했으므로 상상은 잘 안되지만, 게임 동접 30만이 얼마나 엄청난가 생각해보니,
150만이라는 예상을 저들은 어떻게 한 걸까 궁금해졌다.
영화는 괜찮다. 그런데,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상영분의 7배쯤 되는 필름에서 어쩔 수 없이 남겨야할 것만 남겼는데도 아직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라는 느낌으로 무겁다. 마지막의 음악 또한 너무 장중했다. 영화 내내 클래식과 그 유사 곡조를 듣는 것은
좀 힘들다. 휴전인 나라에서의 군인들이 나오는 전쟁영화 아닌 전쟁 때문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영화,
라면 음악도 약간 변칙을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코엑스에서 나오는데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머리가 무거워 버스를 잘못타서 태어나 처음 가는
동네에서 내려야했다. 다시 돌아와 목이 훤히 드러나도록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니,
기돈 크레머의 피아졸라에 대한 오마주가 나왔다.
선혈이 낭자하고 사지가 절단되는 내내, 정통 클래식에 가깝기 보다는 좀 더 비틀린 장르였으면 더 좋았겠다.
음악 덕분에 마지막은 약간 신파가 되어버렸다.
천호진 씨의 멋진 연기는 정말 좋았지만 말이다.
개봉 때엔, 분명 영화의 장르를 인지하고 상영관에 들어섰으면, 하드고어적인 장면들이나 음향에 놀라서
소리지르거나,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 눈을 감아버리고 옆사람에게, 금방 뭐였어? 라고 묻는 인간들이
꼭 있어서 성질을 돋게 한다.
또, 뭔가 그렇게들 먹어대던데...아, 시사회엔 그런 일들이 거의 없어서 좋다. 다들 새 영화에 내가 미리
풍덩 빠져서 볼테니! 라는 느낌으로, 약간은 냉정하게 스크린을 대하는, 그 분위기가 좋다.
피가 튀고 총질은 예사이며 도끼같은 것이 나오는 영화 못 보는 분들은, 그리고 잘놀라고 무서움 많은
분들에겐 힘들 영화겠다. 난 플래닛 테러를 본 지 얼마 되지않아서, 자꾸 비슷한 장면이 겹쳐지는 바람에,
상당히 그 상상 속의 오버래핑을 지워가며 영화를 보느라 그게 좀 힘들었다. 플래닛 테러는 코메디가
아니었던가. 이번엔 진지하고 무거움의 영화였단 말이지. 극단의 장르에서 공통점이 많아버린 탓에,
자꾸 떠올랐다. 왠지 무거운 쪽에 미안해져 버렸다. 게다가, 그 총엔 총알이 더 이상 없습니다, 라는 대사는
내겐 정말 웃겼다. 그러나 아무도 웃지 않아서 웃을 수 없었다. 아...
군대를 안간 나로선 직감하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FPS 게임을 할 때도 그러했지만, 총기류가 나올 때는
저 쪽과 이 쪽이 뭐가 다른지 모라서 그 쓰임새에 따라 어떻게 화면이 바뀌는지도 감이 오지 않았고.
군인들에게 어떤 총이 어느 수준까지 지급되는지도 그러했으며, 수류탄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오싹오싹
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게다가. 왠지 꼭 GP가 아니어도 남자들만 잔뜩 폐쇄된 곳에 몰아넣어져있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지나치게 한쪽만 보고 있을 때 더 이상해지는
법이다. 생각해보라, 잘 때, 한쪽으로만 몸을 향하게 하거나, 몸은 바로 누이고 고개만 돌려서 자고 일어나면
목이 얼마나 뻐근한데.
어떻든. 시사회는 좋았다. 개봉은 4월 3일. 하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그날이구나.
뭔가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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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트랙백을 보냈네요. -_-
식코관련 트랙백 지워주세요...^^
:-) 네!
덕분에 영화 잘 봤습니다 ^^
알 포인트도 엄청난 영화죠. (저에겐 엄청났어요 크크크크;)
저는 좀 둔해서, 영화를 한번에 파악 하질 못 해요.
기본으로 두세번은 봐야 이해가 되는 단세포인데요.
영화 처음 보면 '이 영화 몇일 있다가 또 볼영화' 아님 '걍 휴지통으로 넣어 버릴 영화'로 한국영화를 콜렉션-_- 하거덩요. 크크크;
알 포인트는 처음 보고 그저 그냥 그런 것 같아서.. 바로 휴지통으로 휙-
근데.. 몇 개월 지나고 나서 알포인트랑 감우성이 주연한 다른 영화인 '거미 숲' 이란 영화가 계속 떠오르는 거에요.
그래서 또 응응의 세계에서 구해 봐짜네요.
제가, 감우성 형님을 좋아 하긴 하지만, 영화가 원체 매력이 있어서 그런거 같아요.
이 영화.. 기대 됩니다
이건 언제나 응응의 세계에 웰컴 할까요..-_-;;;
스크린으로 보면 좋은데, 아쉬워요...(아쉬우시겠어요! 쪽이 맞겠군요. ㅎㅎ)
피 많이 튀기고, 참으로 -_- 사실적인 느낌이니 나중에 어둠의 세계에서 보시더라도 미리 마음을 다잡으시길!
알포인트와 거미숲이 개봉되었던 그 전후는 한국영화가 꽤 좋았는데 말이죠...
요즘은 -_-;; 나오는 영화들이 참으로 걱정스럽다는..
볼 영화들이 별로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