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를 부르지 않았지만, 석유를 부르니 피가 불려나와....
혹시나, There will be blood가 성경에라도 나오는 말인가 궁금해서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았다.
이렇게 해석되는 구절 같은 것, 그러니까..."(그곳에) 피가 있을지니라..."과 같은 느낌의 구절인 것은 아닐까 라는.
있을지도 모른다, 와 있을 것이다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있을 것이다, 는 당연히 있다는 것을 누군가 지정해버린 것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의지에 따라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내가 생각해낸 것이냐고?
아니다. 근 20년 가까이 읽고 있는 East of Eden, 에 나오는 말이다.
묘하게도 최근에 읽거나 보고 있는 책과 영화 속에서 나는 늘 에덴의 동쪽의 인물들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No country for old men도 그랬고, 3:10 to Yuma도 그러했으며, 존재의 세가지 이유 연작 또한 그랬다.
게다가 이번의 there will be blood는 아예, 중간중간 나오는 대사 속의 지명과 세세한 단어들이 같았다.
다니엘과 헨리가 석유 송유관을 설치하기 위해서 유니언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바닷가에서 마음껏 해수욕을 하다가 나누는
대화 중에, "피치트리댄스 기억나?"라고 하는 부분에서 놀랐다. 혹시 피치트리댄스, 라는 것이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피치트리 학교에서 열리는 동네 무도회를 말하는 것일까? 에덴의 동쪽에서 존 스타인벡의 어머니인 올리브가 선생으로
있었던 그곳?
다니엘이 (동생이라고 생각했던 가짜 동생) 헨리에게 진짜의 헨리는 어떻게 되었나는, 물었을 때, (가짜의) 헨리는
킹시티에서 만났으며, 그는 죽었고 나는 그의 일기장을 보고 동생 노릇을 했노, 라고 답할때, 아..캘리포니아 설리너스의
그 킹시티란 말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애덤이 집나가버린 그의 아내를 찾으러갔던 그 킹시티인가. 그렇다면, 그 피치트리댄스는,
킹시티의 설리너스 시골 구석의 피치트리학교에서 열리던 무도회가 맞겠구나...라는 생각.
아...어쩌면 다니엘은, 설리너스에서 존 스타인벡의 어머니를 만났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착각.
계속 에덴의 동쪽에서 봤던 서부의 풍경들과 사람들이 펼쳐지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고부터 거의 15분 이상을 다니엘 플레인뷰의 서부 삽질로 계속 된다. 저녁을 먹고 잠시 노곤해진 상태라,
반소매 옷을 입었음에도 약간 썰렁할 것을 각오한 채로, 상영관에서 일부러 코트를 벗었지만, 노골노골 졸음이 몰려왔다.
다니엘은 죽도록 은광인지 금광인지 캐고 다니다가 그 다음에는 석유를 찾아다녔다. 정말 삽질을 하면서 엄청난 집념으로
석유를 찾아냈다. 냉담하고 긴장되어있어서 마치 줄이 팽팽히 당겨진 쇠로된 기타줄 같았다. (미안하다. 사실
이 표현도 에덴의 동쪽에서 빌어온 것이다. 그대로 쓰자면, 신경이 팽팽히 당겨진 벤조줄 같았달까, 라는 것이었다.)
퉁, 하고 튕기면 패앵- 하고 끊어져버릴 듯한 관자놀이를 하고서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석유를 찾아낸다.
그의 유정에서 큰 사고가 나고, 불이 붙고 그의 아들이 그 옆에 있다가 사고를 당해 청력을 잃을 즈음에야 나도 정신이
좀 온전해졌다. 그렇다. 영화 속에서 너무 지나치게 긴장감만 흐르거나 큰 사건이 터지지 않으면 가만히 지켜보는입장에서
졸릴 수 밖에, 어차피 내 인생이 아니므로. 아카데미의 트로피로 내리치더라도, 졸렸던 사실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무로된 볼링핀 따위로 맞는 것보단 아카데미의 트로피 쪽이 낫지 않을까나.
아무도 믿지않아, 세상도 믿지않아, 라는 캐릭터는 줄곧 영화와 소설 속에서 엄청나게 매력을 뿜으며 기용되는 부류들이다.
[3:10 to Yuma]의 벤은 방법은 훨씬 악당스럽지만 따뜻한 [믿지않아]류였다면 [No country for old men]의 쉬거는
냉담한 [믿지않아]류이며, [There will be blood]의 다니엘은 방법은 합법적(?)이나 훨씬 더 저열한 [믿지않아]류이다.
흠, 그러고보니, 이 [믿지않아]류들 덕분에 나는 영화를 볼 수 있는건가.
어떻든, 다니엘의 강한 캐릭터 덕분에 이영화는 나아갈 수 있었다. 뭔가 뭉텅뭉텅 중간 이야기를 덜어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큰 위화감없이 그 덜어내어졌을 세월이 예측이 되면서, 마지막 장면까지 다니엘의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 전적으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의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캐릭터 덕분에 다른 인물들은 모두 희미한 존재로
단지 배경같았달까. 모노드라마를 보고 나온 듯이.
단, 다니엘만큼 비열한 목사를 연기한 그만 빼고.
(☞ '그' 관련기사)
마지막 장면, 마치 교회 예배당에 의자들을 다 치워버린 듯한 느낌의 홈 볼링장에서의 피를 부르는 쫓고 쫓김이
"I'm finished." 라는 말로 정말로 끝나버렸고, 영화도 끝났다. 아마, 석유재벌 플레인뷰의 만만찮았던 팽팽한 삶도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거기서부터 시작이야, 드디어 피가 왔으니까, 라는 느낌은 왜인지.
아주 산뜻한 결말이었다. 이런 마지막 장면이 아니었다면 끔찍했을거야, 라고 진저리 쳤다.
독한 인간들 같으니라구. 모두 다.
뒷맛이 묘하다. 아무런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그렇다고 해서 멍한 기분이 아닌 입술 근육만 실룩거리게 만들어줬다.
묘한 불협의 현악 연주나 타악 연주가 내내 신경을 긁더니, 좀 편안한 음악이 나오면서 i'm fin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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